'7080 낭만 가요' 카테고리의 글 목록 (5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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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조경수 - 돌려줄수 없나요 조경수 - 돌려줄수 없나요 조경수는 1948년 12월 18일 서울 출생으로 60년대 록 그룹 이던 1기 "Four Guys" 의 리더 한웅이 "HE 5" 를 결성하며 팀을 떠나자 1967년 황규현이 결성한 2기 "Four Guys" 에서 베이시트를 맡았었고 1968년 그룹이 재편성 되면서 정성조와 메신저스 로 옮겨 베이스를 맡아 활동하다 1976년에 솔로 전향을 해서 아니야 로 가수로 데뷔해서 1979년 KBS,TBC (동양방송 가요제 대상) 두 방송사에서 가수왕을 차지하며 최고의 가수로 한창 인기를 올리다 1982년 돌연 미국 으로 떠나면서 가요계에서 멀어졌습니다. 히트곡으로는 "아니야","돌려줄 수 없나요","행복이란",번안곡 "YMCA","징기스칸" 등이 있으며,현재 강남 삼성동에서 자신의 이름을 .. 더보기
민해경 - 사랑은 이제 그만 민해경 - 사랑은 이제 그만 민해경이 1986년 발표해 가요톱10, 7월 마지막 주, 8월 둘째 주 1위(2주, 통산 3주) 한 곡. 1986년 초에 발매한 "민해경 귀국앨범 제1집"의 타이틀 곡이었다. ​국악예술고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 국제가요제"를 노크한 민해경은 1981년 "누구의 노래일까"로 정식 데뷔한 후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내 인생은 나의 것" 등을 히트시키면서 인기가수로 정상을 달리다가 요정 출입 스캔들 때문에 국내에서 방송 출연을 금지 당하자 일본으로 진출한다. 금지 조치가 풀린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활동히며 내놓은 앨범에 실린 곡이다. 이 음반 타이틀곡인 "사랑은 이제 그만"이 큰 사랑을 받으며 재기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같은 음반 B면에 실렸던 리메이크곡 "내 .. 더보기
나훈아 - 지금도 가고싶어 나훈아 - 지금도 가고싶어 "지금도 가고싶어" 의 원곡은 1970년에 홍이주 가 처음으로 불렀던 곡이다 당시에는 무명가수들이 자신의 노래를 알리려면 자비로 방송국 PD 들을 찾아다니며 한번이라도 틀어달라고 애걸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수를 꿈꾸며 시골에서 논밭 팔아 상경한 사람들로서는 금방 자금이 바닥나고 음악다방등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LP판을 주며 한두번 만이라도 틀어달라고 했었다 작곡가들은 이런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인기있는 가수들에게도 곡을 주어 히트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훈아의 최고 히트곡 중에 하나인 "가지마오" 도 원곡은 박철이라는 무명가수로 작곡가 남국인씨 문화생으로 들어가 "가지마오" 한곡을 받아 일년동안 연습해서 앨범을 낸 후 방송국 PD들을 찾아다녔으나 가진것 없는 그의.. 더보기
조용필 - 정 조용필 - 정 조용필의 "정"은 어쩌면 조용필을 대중가수로 이름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 곡인데 이곡은 지방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해 경부선을 타고 서울로 상경한 곡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덕화가 TV방송에서 이 곡을 부르면서 더욱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대중앞에 다가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조용필은 이곡을 데뷔 초부터 부르기 시작하여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이 중단 후 복귀 때까지 이곡이 앞에서 조용필의 인기를 견인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곡은 1976년 4월 조용필의 첫 독집앨범에 실려 발표된 곡이다. 이후 1976년 8월 조용필 영사운드 스필릿 음반 "너무 짧아요 / 돌아와요 부산항에 / 정 / 돌아오지 않는 강"과 1977년 컴필레이션음반 "'77년도 대학가에서 애.. 더보기
임희숙 -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임희숙 -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임희숙은 중학교 2학년 때는 미국 흑인가수 샘 쿡에 빠져있었고 가장 영향을 받은 가수라고 한다. 고등학생 2학년에 작곡가 손목인에게 재즈를 사사받고 워커힐 무데에 처음 섰다고 한다. 이후 방송과 CM송을 부르며 활동하다가 1969년 음반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짙은 허스키 보이스에 소울이 가득한 창법은 사람들 틈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고 키보이스 반주로 녹음된 음반의 곡이 서서히 빛을 발해 2년 뒤에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임희숙은 이어 "기다려야할 사람(1971), "지난 날(1974)", "돌아와 주오(1975)" 등 히트곡을 내다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 되어 5년 가까이 공백기를 맞는다. 이때 개인적인 어려움 등이 복합된 스럼프 기간이었다. 자숙하는 중 교회.. 더보기
남궁옥분 - 꿈을 먹는 젊은이 남궁옥분 - 꿈을 먹는 젊은이 1982년 발표한 남궁옥분 5집음반에 실린 곡이었다. 이 곡은 1982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로 남궁옥분은 MBC 10대가수상과 KBS 가요대상 여자가수강을 안긴다. N.K.O.B.(남궁옥분)은 1979년 "알게 될거야/보고픈 내 친구"를 발표하며 데뷔하는데 데뷔 이전부터 이미 쉘부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계가 고장나 수리비를 마련하려고 쉘부르 오디션에 참가했다는 남궁옥분은 쉘부르에서 1980년까지 활동하다가 이종환과 다투고 떠나는데 당시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라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남궁옥분의 소리는 탄산음료를 처음 땄을 때 올라오는 거품이 터지는 소리처럼 청량감이 일품인데 맑은 목소리에 살짝 떨리는 듯한 목소리와 짧게 흔들리는 바이브레이션이 그런 느낌을 주는 것.. 더보기
전영 - 모두가 천사라면 전영 - 모두가 천사라면 1983년 전영의 마지막 정규앨범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 앨범에서 "작은 평화"와 함께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1977년 "어디쯤 가고있을까"로 데뷔한 전영은 1980년까지 활동하다가 독일 유학을 다녀온 후 1981년 귀국앨범을 내며 활동을 재개하였고 1982년 결혼하고 1983년 이 음반을 내고는 가요걔를 떠난다. 2000년대 이후 7080가수들의 재기 러시가 있었지만 전영은 나타나지 않은 사레에 속한다. 천진한 어린이들의 생각을 담아낸 곡으로 전영의 맑은 목소리의 염소창법과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으로 이후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로 인식되어 동요로 불리고 있는 곡이다. 이 곡이 원전은 스위스에서 불린 "오리춤(Der Ententanz)으로 1950년대 스위스 다보스의 아코디언.. 더보기
이은하 - 네가 좋아 이은하 - 네가 좋아 이은하가 1982년 발표 곡으로 1차 성장기와 2차 전성기를 지나 다시 인기에 불을 붙이 는 곡 중 한 곡이다. ​이은하(본명 이효순)은 새나라악극단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이배영)의 영향과 엄격한 훈련으로 기초를 탄탄하게 다졌고 작곡가 김준규 문하로 들어 가수 수업을 하였고 1972년(만 13세) 받은 김준규 작곡 "님 마중"과 1973년 원희명 작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데뷔하였다. ​13살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탄탄한 실력과 허스키한 보이스에 대형가수 못지않은 성량과 풍부란 감성으로 데뷔와 함게 주목을 받았고 1973년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과"최진사댁 세째딸"이 1976년 본격적인 활동과 함께 히트하면서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1977년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