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 낭만 가요' 카테고리의 글 목록 (46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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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이수만 - 세월이 가면 이수만 -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이라는 제목의 곡이 몇 곡있다. 단음절이 아닌 문장으로 된 곡목 중에서는 중복되는 곡이 쉽지 않은데 그만큼 "세월"이 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아쉽고 허전한 것이 공통인 것인가보다. ​오늘은 1970년대 중반에 꽤 인기가 있었던 곡을 찾아 본다. 이수만이 한창 인기가수로 부상할 때 불러 중고 신인으로 신인가수상을 받기 1년 전인 1975년 2월 발매한 "Golden Folk Albumn Vol.10"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 곡은 이수만 작사 작곡의 노래이면서도 이수만이 음반을 발매한 1년 뒤인 1976년 8월에 양희은도 앨범에 올렸었고 그에 앞선 6월에는 채은옥도 불렀다. ​양희은의 앨범에서는 이주원이 만든 "한사람"과, "그리운 내님네는" 같은 곡이 더 사.. 더보기
송창식 - 한 걸음만 송창식 - 한 걸음만 1974년 발표한 제4집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맨 처음 고백", "한 걸음만", "새는', "한번쯤"은 기존의 곱고 아름다은 서정적인 곡들과 분윅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음반이었다. 이 음반은 1975년 발매된 것으로 표기된 곳도 있어 더 확인이 필요하다. 이 음반 A면 두번째 곡 "한 걸음만"이젠 서로 제대로 사랑의 불이 붙었나보다, "한번쯤"에서 짝사랑하는 여자를 몰래 쫒아 다니다가 조금 더 천천히 걸었으면하고 바라다가 "맨 처음 고백"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한걸음만"에서 더 까까이 있고 싶은 사랑의 수순을 밥고 았는 것은 아닌지 마치 시리즈 사랑 고백노래 같다는 생각해보면서 20대 송창식의 사랑과 나의 그때의 시절을 떠올려본다. 송창식의 .. 더보기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 -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는 여세을 몰아 두번째로 발매하는 2집에서도 빅히트곡을 내놓는다. 역시 정은이 남국인 콤비와 함께한 강남 노래였다. "신사동 그 사람" 영동대교에서 하류로 조금 내려와 한남대교 남단 신사동은 역시 당시 강남의 밤문화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곳. ​신사동은 밤이 늦으면 택시들이 즐비한 가운데 택시 잡기도 힘들었을 뿐아니라 하다못해 당시 대리기사라는 것이 없던 시절임에도 한남대교에서 음주단속이 있으면 다리만 건네주는 단거리 대리가 있어 신사동 밤문화 발전과 음주운전조장에 일조(?)하며 대리기사 업의 시초가 된다. 주현미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곡으로 이전의 "비내리는 영동교"에 비해 자연스러워진 주현미 만의 발랄한 트로트 느낌이 완성되고 있는 듯하며 이에 더해 가사내용도 강남 .. 더보기
장남들 - 바람과 구름 장남들 - 바람과 구름 제 1회 해변 가요제(1978) 장려상 수상 작품이다. 이 곡을 연주한 그룸은 "장남들"로 5개 대학 연합 팀이었다. 김창진(오르간, 홍익대), 박일병(드럼, 경희대), "김철(보컬, 단국대), 박상혁(기타, 인하대), 박영선(베이스 기타, 산구전문대) 로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린 동양방송 주최 가요제는 마치 그룹경연대회와 같으 분위기였다. 참가 팀 12 개 중 솔로는 단 두 명뿐이었으니까.여름이라는 계절적인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고 당시 음악의 경향이 그룹 사운드가 붐을 일으켜 캠퍼스 밴드가 우후죽순으로 발전한 결과이기도 했다. 장남들은 1979년 김철 대신 "바람과 구름"을 작곡한 노수영이 보컬로 참여하고 기타에 박상혁 대신 오영섭이 가세하여 제1회 MBC 강변축제인 강변가요제에서 .. 더보기
이태원 - 여인아 이태원 - 여인아 이태원의 재기작 "솔개"와 함께 히트한 곡 이태원이 솔로로 음반을 낸 것은 1973년이니 쉐그린 활동을 할 때였다. 쉐그린 활동이 잠시 침체하자 솔로 앨범을 낸 것. 조동진의 곡 "물방울 떨어지고, 마지막 노래"를 불렀으나 이마저 신통치 않자 다시 쉐그린으로 활동하지만 표절시비와 대마초 사건으로 결국 해체하고 1976년 도미했다가 1978년 귀국하여 개인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종환과 조동진의 도움으로 재기 앨범을 내는데 1980년 "그대를 위한 노래/고속버스"였다. 이 음반은 시들했고 1982년 다시 도전한 음반 "솔개/여인아"음반에서 "여인아" 와 "솔개" 등이 히트하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이 음반의 타이틀 곡이었던 "여인아"는 그동안 이태원이 솔로로 활동하면서 주로 부른 조동진 .. 더보기
양희은 - 들길 따라서 양희은 - 들길 따라서 양희은은 데뷔하면서는 김민기의 곡을 많이 불렀고 방의경, 김광희나 서유석, 조동진, 한대수, 김정호, 이수만 등 포크 뮤지션과 또 신중현, 김기웅 같은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부르기도 했는데, 1974년 이주원을 알면서 부터는 이주원의 곡을 많이 부른다. 양희은의 가수활동 초기를 좀 더 세분화해본다면 이주원의 곡을 주로 부르던 시기는 데뷔 초 중에서 음악적 감성이 작곡가 에 따라 조금 변형되면서 서정적 포크과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 시기라 할 수 있다. ​1974년 "내님의 사랑은"으로 시작된 이주원의 곡은 1975년 "한 사람", "모두 모여 노래를","그리운 내 님네는"으로 이어지며 히트곡을 내었고 1975년 "네 꿈을 펼쳐라"와 "들길 따라서"에서 이주원과의 협업의 최고 정점을 .. 더보기
바니걸스 - 휘파람을 불며 바니걸스 - 휘파람을 불며 박재홍은 1947년 가요콩쿨에서 우승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였고 이듬해 데뷔곡 "눈물의 오리정"을 취입한다. 이어 "자명고 사랑"으로 박재홍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바로 반야월이 1946년 민든 곡 "울고 넘는 박달재"를 맏1950년 발표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6.25전쟁으로 가요계도 주춤하였지만 낙동강방어선이 유지고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가요계도 힘을 얻어 피난지 에서도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박재홍도 활동을 재개하면서 "경상도 아가씨(1951)", "물방아도는 내력(1953)", "향수(1953)" 등의 노래를 불러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감성을 어루만져 위로한다. ​이 무렵인 1957년 발표한 노래가 희망적인 곡 "휘파람을 불며"였다. 이 곡은.. 더보기
정유경 - 그리운 그대모습 정유경 - 그리운 그대모습 이곡의 첫 구절만 들어도 클리프 리챠드의 곡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렇게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인기 팝송들은 대부분 번안되어 불리기도 했고 이곡도 번안곡이 있었다. ​이곡은 1971년 이용복이 먼저 번안해 부른 곡이었는데 이용복의 목소리가 쟁쟁한데 곡은 찾아 듣지를 못했다. 이용복이 부른 곡은 정위화 작사에 이철혁이 편곡한 곡으로 1971년 이용복의 두번째 독집앨범인 "이용복 걸작선" "산레모가요제 입상곡 1943년 3월 4일생/마음은 짚시"에 A면 마지막곡으로 수록되었다. ​이 번안곡은 1983년 데뷔한 정유경에 의해 다시 리메이크 된다. 정유경은 재미교포 여가수로 1982년 KBS "젊음의 행진"에서 짝꿍들로 활동하다가 솔로 데뷔하면 음반을 낸다. 정유경은 데뷔 앨범에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