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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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양희은 - 아침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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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 아침이슬




양희은의 대표곡이자 한국 포크가요의 대표곡이라고 불러 마땅한 

곡이다.

 

발표 이후 시련과 함께 저항가요의 정상으로 섰지만 그 이전  이노래

는 대학생들의 꿈과 이상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으로 그 순수함과

희망의 메시지를 한껏 내포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쩌다 저항가요, 무엇인가 주장하는 강한 메시지가 먼저

떠오르는 곡으로 예술성보다는 사회참여성이 더욱 강한 곡이 되었다

는 점에서는 아쉬운 감도 없지 않은 곡이 되었다는 것도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작용 반작용", "에너지 보존접칙"과 같은

물리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이용복의 12줄 기타 반주로 시작하는 원곡을 듣는 기쁨.
"아침이술"은 발표되자마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하는 애창

곡이 되었다.

 

"아침이슬"은 1970년 8월에 가장 먼저 김민기의 목소리로 불렸다.
이때는 명동 YWCA 청개구리홀에서 대학생들이 노래를 하면서 모일

때였는데 이때 재수생이었던 양희은은 김민기를 처음 만난다.

양희은은 이후 김민기의 동창을 통해 조각난 아침이술 악보를 건네

받았고 아직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 서강대 사학과에 진학한 양희은은 1971년 6월부터 라이브 음악

카페인 명동 오비스 캐빈에서 노래를 하게 되었고 이 "아침이슬"을

포함해 번안곡 등을 부르던 양희은은 킹레코드사 사장의 눈에 띠어
음반을 취입하게 되면서 가장 아끼던 "아침이슬"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엄마, 엄마!", "세노야, 세노야" 등과
번안곡으로 구성하여 당시 화제였던 12줄 기타 명인 "이용복"은 김민기의 노래를 사전에 알지 못해 녹음실에서
맞취가면서 반주를 했다는데 이렇게 좋은 명음반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1"이 1971년 9월 세상에 나온다.

 

 

앞서 말한대로 "아침이술"은 발표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는 양희은

의 대표곡이 되고 1973년에는 "고운노래상"도 수상한다. 이 노래의

운명은 대학생들의 시위에서 사용되면서 갈리게 된다.

속칭 데모송의 원조가 되면서 정부에서는 "시의 부적합", "허무주의

조장" 등의 사유로 처음에는 "태양은 묘지 위에 불게 떠오르고"를

"태양은 대지 위에 붉에 떠오르고"로 수정하는 등 일부를 개사해

부르게 하다가 결국 금지가요로 결정하여 양희은의 음반과 김민기의

음반은 압수 폐기되는 결과를 낳아 희귀앨범이 된다.

김민기는 회고에서 이 노래를 그저 "아침이술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

었을 뿐"이라며 저항의식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곡도 아니며 시위에 사용될 줄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고, 양희은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항가수가 된다. 만든 사람의 입장과 사용하는 사랑의 입장이 바뀌면 대상의 운명도 함께 바뀌는 것이 세상일이다.
이제 이 노래는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초기의 의도와는 다른 저항과 투쟁의 의미가 덧씌워져 있다.

 

 

 

 

 

 

 

양희은 - 아침이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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