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환과 고바우 - 석별의 정
"건전가요 부르기"와 "다 함께 노래부르기"라는 운동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 한번 잘 살아 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등바등 하던 때다.
오래전 일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잊고 싶은 이들도 꽤 많을 것이다.
과거의 향수라 치부할 수도 있고, 정권의 하수 역할이라 폄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스스로 좋아해서 국민들이 함께 건전
하고 밝은 노래를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온 힘을 기울여 이 일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전석환이다.
1934년 황해도 용매도에서 태어난 전석환은 연세대 종교음악과에 댜니던 1958년 조선호텔 미군장교클업에서 전자올갠을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음악인 활동을 시작한다.
1960년대 초 YMCA를 통해 "싱어롱Y"활동을 시작하는데 4.19와 5.16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사회, 휴강이 잦은 학생들은
갈 곳이 없어 음악감상실을 애용하였고 음악감상실을 돌며 시작한 것이 "싱어롱 Y"활동이다.
Y는 Youth, Young, YMCA를 의미한다.
이 행사에서는 당시에는 쉽지 않았던 외국 민요와 한국 민요를 채보해 불렀고, 1965년부터는 YMCA에서 매주 토요일 정기
행사로 고정되면서 YMCA에 노래하는 대학생들이 몰리고 포크송과 캠프송의 기폭제가 된다.
전석환은 방송에도 진출해 "다함께 노래하자", "노래의 메아리", "삼천만의 합창" 같은 행사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노래를 전파하고 다녔다. "부르는 노래에 따라 생활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음악 테라피"라는 말을 처음으로 쓰기도 한
긍정의 화신이기도 했다.
맑고 시원한 음성과 능란한 화술과 진행솜씨로 레크리에이션과 캠프송의 붐을 일으키기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석환이 처음 싱어롱 Y 활등을 시작할 때 불렀던 석별의정 은 졸업식 등 이별의 장소에서 화음을 넣어가며 합창으로 흔히 불렸다.
이곡은 "전석환과 고바우"가 발표한 것은 1972년 이지만 전선환이 번안헤 발표하고 무대에서 많이 불러 이미 대중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져있었고 특히 당시 포크가수들이 앞다투어 발표하기도 했던 곡이다.
그래도 아마 이 노래는 전석환이 가장 많이 불렀을 것이다.
전석환과 고바우 - 석별의 정
날이 밝으면 멀리 떠날 사랑하는 님과 함께
마지막 정을 나누노라면 기쁨보다 슬픔이 앞서
떠나갈사 이별이란 야속하기 짝이 없고
생각할사 적막함이란 애닲기가 한이 없네
일년사시가 변하여도 동서남북이 바뀌어도
우리 굳게 맺은 언약은 영원토록 변합없으니
떠나갈사 이별이란 야속하기 짝이 없고
생각할사 적막함이란 애닲기가 한이 없네
세상만사가 역겹다고 원망한들 무엇하며
먹구름이 끼었다고 찌푸린들 무엇하리
떠나갈사 이별이란 야속하기 짝이 없고
생각할사 적막함이란 애닲기가 한이 없네
애닲기가 한이 없네 애닲기가 한이 없네
[출처] 가요(5060)/석별의 정 - 전석환|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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