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미 - 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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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조미미 - 바다가 육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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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미 - 바다가 육지라면




조미미는 본명이 조미자로 전남 영광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하였고 1965년 동아방송주최 가요백일장을 통해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발탁되면서 그해 "떠나온 목포항"을 발표하면서 데뷔한다. 

1969년 발표한 "여자의 꿈"으로 인지도를 높이다가 "서산 갯마을"을 안착시키고 1970년 4월에는 "선생님"을 발표하며 가수로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던 차에 9월 "바다가 육지라면"으로 정상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조미미는 제2의 이미자라는 얘기를 들을만큼 애수어린 정조를 아름다운 미성에 담아내 60년대말과 70년대를 풍미한 가수였다.
​이 곡은 작사가 정귀문이 인터뷰에서 "1969년 봄 고향 경주시 나정리 앞바다에서 파도에 마음을 실어나르다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수평선에 그려놓고 바라보면서 노랫말을 지었다"고 말했다.

2009년 감포읍 나정리 해수욕장에 "바다가 육지라면"노래비가 건립되었다.
조미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지구레코드를 드나들었는데 본명 조미자의 이름 "미자"가 이미 활동하고 있는

이미자의 이름과 같아 작곡가 김부해가 "미미"로 바꾸어 주었고 동아방송 민요 콩쿨인 가요백일장에서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발탁되었던 것.

이 세 명 중 김세레나가 가장 먼저 인기를 얻었고 조미미가 가장 늦은 편이었다.
인기가수 반열에 오르면서 스캔들도 많은 가수 중 한명이었는데 동향이었던 남진과는 무척 가까운 사이로 남진이 해병대로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뒤 약혼을 발표하기도 했었고 나훈아가 작사 작곡한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를 발표하기도

하는데 나훈아와도 스캔들이 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조미미는 1973년 재일동포 사업가와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가며 여러 소문을 잠재웠다.

 

 

 

조미미 - 바다가 육지라면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배 떠난 부두에서 울고있지 않을 것을

아, 바다가 육지라면

눈물은 없었을 것을

 

 

 




어제 온 연락선은 육지로 가는데

할 말이 하도 많아 목이 메어 못합니다

이 몸이 철새라면 이 몸이 철새라면

뱃길에 훨훨 날아 어디론지 가련마는

아,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

 

 

 

[출처] 가요(7080)/바다가 육지라면 - 조미미|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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