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 하얀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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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의 포크가요

김정호 - 하얀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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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하얀나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졌던 남자. 가수 김정호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창백했고 사슴처럼 선한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눈물

을 뚝뚝 떨굴 것만 같았다.

 

그의 가슴엔 사막 하나가 들어앉은 듯, 목소리에 늘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이 불어갔다.

그 지독하게 쓸쓸하고 슬픈 성문(聲紋)은 한국 음악에서 일찍이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의 몸을 통과하면 노래는 탄식이거나 울음이 됐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사람처럼 노래를 불렀다. 목숨 한 줌과 노래

한 소절을 기꺼이 맞바꿔버린 듯한 처절함이 있어, 그의 노래가 끝나면

삶의 한 시절이 닫히는 듯했다.

 

 

1974년 '이름 모를 소녀'로 데뷔하고 1983년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라는 마지막 히트곡을 남기고 33년의 짧은 삶을 마칠 때까지,

그는 고독과 허무를 자기 집으로 삼았다.

그가 만들고 노래한 곡들은 모두 그 두 감정의 변주였다.

 

대표곡 '하얀 나비'는 그를 그대로 빼닮은 노래다. 그는 평생 "길 잃은

나그네"였거나 "님 찾는 하얀 나비"였다. 삶은 "잃고, 찾는" 방황과 결핍, 이 둘 안에서 맴돌다 사라져간다.

 

사람은 길을 잃고, 나비는 사랑을 잃었다. 이는 다르면서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갔을까"와 "어디로 갈까요"라는 문장은 물음이자 탄식이

기도 하다.

 

"음"하며 노래의 문을 여는, 메마른 바람소리 같은 허밍엔 오래 혼자 걸어온 자의 고독이 스며 있다.

짧게 명멸하는 저 한 음 안에 김정호 인생이 지나온, 그리고 가야 할 길

이 정해져 있다.

삶의 뿌리를 들어올린 허무의 세계에 견고한 관계란 없다.

 

그래서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라며, 오고 가는 일의 부질없음을 노래한다.

그러니 "꽃잎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때가 되면 다시 피고", 또 지는 일이 영원히 거듭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다시 피는" 재회의 희망이 아니라, 다시 지고 말 것이라는 무상함에 방점이 있다.

 

 

 

한국인에게 하얀 나비의 운명적 날갯짓을 보여준 이 노래는, 슬픔의 어떤 근원적 형태를 일러준다.

그 작고 가녀린 날갯짓으로는 막막한 사막을 결코 건널 수 없을 것이라

는. 그리하여 아득하고 먼 사랑에 끝내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슬픔이 일시적 감정의 상태라면, 슬픔이 삶의 조건이 되는 상태를 한(恨)

이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김정호는 '한의 가객(歌客)'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노래들은 우리를 슬픔의 심연으로 끌고 내려가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이를 값싼 감상(感傷) 혹은 청승으로 낮잡아 보는 건 잘못이다. 그에겐 그런 단어들이 넘볼 수 없는 생래적이고 운명적 절박함이 있었다. 그는 슬픔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슬픔 안에 자신의 삶을 가뒀다.

 

 

죽음을 두 해 앞두고 투병 중에 힘겹게 완성한 앨범 'LIFE'는, 삶의 무의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내파(內破)한 영혼의 마지막 기록이 됐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님'의 처절한 절규도 인상적이지만, 앨범에

서 가장 주목해야 할 곡은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퍼'다.

 

놀라운 멜로디에 감각적 글쓰기가 더해진 이 노래엔 그가 평생 안고 온

고독과 허무의 푸른 광채가 찬란하다.

 

그 노래 안에 들어서면 삶은 덧없는 "실바람" 한줄기로 잦아들 것만 같다."거친 바람 불어와 놀다 간 자리('한 세상에 태어나')"에서 언덕 저편으로 영원히 날아가 버린 하얀 나비는 길을 찾았을까. 그의 슬픈 목소리 속으로 세상의 길이 다시 흐려진다.

 

 

 

 

 

 

 

 

김정호 - 하얀나비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음음음 음음음음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 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

음음음음 음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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