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산 - 용두산 엘레지
고봉산(본명 김민우)는 1927년 황해도 안악에서 태어나 젊어서는 악극단 생활을 하다가 1961년 서른일곱의 늦은 나이에
"아메리칸 마도로스"라는 곡으로 가수데뷔한다.
가수로 데뷔하기 전인 1957년 고봉산에게 주겠다고 해 열심히 연습하던 곡인 무적인 작사, 작곡 "울어라 기타줄"이 손인호
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가까운 용두산으로 달려 올라갔다.
"어떻게 이런 배신을 할 수가 있지..." 울분을 삼킨 고봉산이 한 일은 작곡을 배워 직접 곡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날의 일을 기억해 글로 남겨 놓고 아세아레코드 최치수 사장과 곡을 다듬어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용두산 엘레지"로 다른
이름으로는 "추억의 용두산"이다.
2년 뒤 2절 가사를 바꿔서 "추억의 용두산"으로 제목을 바꿔 재취입했다.
고봉산은 이 곡으로 큰 히트를 하면서 가수 데뷔 후 가장 큰 사랑을 받는다.
이후 고봉산은 작곡에 몰두하면서 고봉산 작곡집을 계속 발표한다.
그런 와중에 하춘하와 1971년에는 듀엣앨범을 발표하기도 하고 송춘희와 부른 "잘했군 잘했어"를 하춘하와 다시 부르면서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1979년에는 독집앨범인 "고봉산 애창곡집"을 내기도 하는 등 가수와 작곡가 활동을 하다가 1990년 67세 일기로 타계한다.
이 곡은 고봉산이 취입한 이후 1971년 은방울자매가 "추억의 용두산"으로 취입했고. 1973년에는 김상진이 "용두산 엘리제"로
취입하는데 창법과 가사가 왜색조에 가사가 비관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다.
같은 해인 1973년 나훈아가 "추억의 용두산"으로 취입하였다. 이후 이 노래는 이후 한동안 "추억의 용두산"이 대세로 자리
잡아 쓰였으며 1980년대 이후 원제목이었던 "용두산 엘레지"로 돌아왔다.
사실 이 노래를 다시 알린 것은 주현미의 "디스코 파티"와 "쌍쌍파티"였다.
주현미는 메들리 음반에서 너무도 많은 곡을 담아 소화해 내면서 어디에 어똔 곡이 숨어 있는지 가수 자신도 다 알기도 쉽지
않을 곡을 소화해 냈는데 "쌍쌍파티"와 "리듬파티" 시리즈를 발매하는 중간에 발표한 "디스코 파티(1985.10)"에 B면 첫곡이
바로 이 "추억의 용두산"이 있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이미 여러차례 많은 가수들에 의해 커버됐던 인기곡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는 김용임, 정재은,
이자연 등을 비롯해 이 곡이 발표될 당시에는 많은 남자가수들과 희극인들의 단골곡이기도 했던 노래다.
고봉산 - 용두산 엘레지
용두산아 용두산아 너만은 변치말자
한 발 올려 맹세하고 두 발 디뎌 언약하던
한 계단 두 계단 일백구십사 계단에
사랑 심어 다져놓은 그 사람은 어디 가고 나만 혼자 쓸쓸히도
그 시절 못잊어 아, 못잊어 운다
용두산아 용두산아 그리운 용두산아
세월따라 변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냐
둘이서 거닐던 일백구십사 계단에
즐거웠던 그 시절은 그 어디로 가버렸나 잘있거라 나는 간다
꽃 피던 용두산아 용두산 엘레지
[출처] 가요(5060)/용두산 엘레지(추억의 용두산) - 고봉산|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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