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의 음악을 들으면 난 언제나 박하사탕 香을 맡는다. 푸르디 푸른 靑春의 아름다운 향기같은 화사한 향기. 우울한 가사들에서조차 그런 젊음의 香이 난다. 가슴이 시리고 마음이 싸-한 청춘의 기억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 금지곡과 대마초라는 어두운 이미지, 사업 부도와 미국 도피라는 불운한 퇴장, 이장희의 음악과 그를 둘러싼 이런 것들이 어쩌면 70년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만개하지못한 젊음의 꽃, 이장희이다. 우리의 70년대는 정점에서 그를 꺽어버렸다. 그리고, 80년 여름에 또 한 번 찍어 넘긴다.
이장희(1947 - )
1947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나, 명문 서울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수재과였다. 그리고 연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그는 동대학 의대생이던 윤형주를 만나면서 포크트리오 '라이너스'를 결성, 활동하지만, 얼마 못가 트리오는 사정상 해체된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싱어송 롸이터의 시대를 연 장본인인 이장희가 음악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이 시대의 기인이자 가수이며 화가인 조영남의 영향이 크다. 이장희가 中2일 때 삼촌의 친구였던 당시 高1 조영남이 집에 놀러와서 노래하는 걸 우연히 보고 충격을 받는다. 어린소년 이장희는 이렇게 음악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다.
1971년에 발표된 이 음반의 B면에 '무지개'와 '겨울이야기'가 수록되었고, 이장희의 가수로서의 데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음반은 당시 인기DJ였던 이종환의 권유로 취입한 것이다.
가수로서의 정식 데뷔와 KBS라디오에서의 DJ 생활, 작곡가로서 등의 나름 바쁜 활동을 하던 이장희는 드디어 1972년 첫 독집 디스크를 발표한다. 이장희의 첫 독집음반으로 강근식이 이장희와 함께 기타 반주를 맡았으며, 포크 넘버인 '아빠의 자장가' 를 작곡해주기도 한다. 1972년도만해도 아직 포크 싱어들은 자작곡보다는 번안곡 위주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자신의 음반을 자작곡으로 거의 채운 포크 싱어는 당시 김민기와 이장희 정도가 아니었을까?
1973년 1월 1일에는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 DJ로 라디오로 복귀하면서 시쳇말로 완전히 떠버렸으며. 이어서 독집으로 통산 2집인 본작을 발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장희의 LP이며, 또 제일 좋아하는 '꿈 이야기' 가 실려있는 앨범이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는 느낌이랄까?
'꿈 이야기' 는 이장희가 추구하는 것이 단순한 모던포크가 아니라 포크락임을 보여준다. 반주가 어쿠스틱 기타 하나라 단순하게 들리지만 스토리가 있는 긴 곡의 진행 등에서 그게 느껴진다. 마치 보석같은 브리티쉬 포크락을 듣고 있는 것처럼. '애인'과 '비의 나그네' 는 송창식이 불러 힛트를 쳤고, '마지막 노래' 는 조동진이 만들어 수많은 이가 불렀다. 또 그의 데뷔 LP에 실렸던 토크송 '겨울 이야기' 도 흐른다.
이장희와 강근식(1969)
둘의 첫만남은 1968년말 소공동의 고급 살롱 "멕시코"에서이며,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친해졌고 오비스 캐빈에 듀오로 정기 출연을 하면서 음악 생활을 시작하는데, 당시는 바야흐로 국내에 포크 듀오가 들불처럼 피어나는 태동기였다. 하지만 둘의 듀오 활동은 극히 짧았는데 강근식의 군 입대가 이유이었다.
1973년, 군에서 돌아온 강근식은 이장희와 밴드를 결성한 후 착실하게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이장희의 솔로 독집으로 발매되었고, 모든 곡의 반주는 '동방의 빛'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멤버들이 한다.
** 후에 이호준(키보드)이 가세하고, 드럼이 배수연에서 유영수로 교체되면서 70년대 중반의 소리꾼들 '동방의 빛'이 탄생한다.
이장희의 통산 세 번째 앨범으로, 1973년에만 5만장 이상이 팔려나간 최고의 힛트작이다. 70년대 국내 포크락의 명반중 하나로 기억되는 판이며, 이장희와 강근식의 음악적 지향점이 마침내 만난 것이기도 하다. 전작 앨범들에 실렸던 '애인', '그애와 나랑은', '비의 나그네' 등도 포크락적으로 재해석하여 싣고 있다.
1974년에는 이장희에게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최고의 해이었던 것 같다. '그건 너' 의 여세를 몰아 '한잔의 추억' 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가 크게 힛트를 하면서 완전히 국내 최정상급의 가수로 자리를 잡았고, '그건 너' 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의 실제 모델인 이대 불문과 출신의 첫사랑 서혜석과의 결혼도 이루어졌기에. 둘은 서울 타워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사귄 지 3년 만이었다.
1974년 한국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화제작으로 46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대박 무비이다. 이장희가 음악을 맡았으며, '동방의 빛'이 全사운드트랙을 연주한다. 더 이상 감미로울 수 없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80년대까지도 메아리로 대학가를 울렸던 '한잔의 추억'. 당시 17세 소녀 윤시내의 앳된 보컬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영화의 대박 못지않게 이장희의 음악세계도 중요한 포인트이고 '동방의 빛'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시대를 앞서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75년에 대도에서 발매한 "나야나/창가에 홀로 앉아"와 똑같은 앨범 커버로 출신된 카피음반인데, 훌륭한 이장희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LP이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1975년 6월, '그건 너', '한잔의 추억', '불꺼진 창'등 대표곡들이 금지곡에 묶이면서 한 팔이 족쇄를 찼고, 그해 12월에는 대마초 파동으로 구속되면서 한 팔마저 묶였다.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급전 낙하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장희의 콧수염이 그렇게도 윗분들에게 거슬렸었나??!!
모든 음악 활동이 금지당했던 이장희는 1978년 최고의 그룹싸운드 '사랑과 평화'와 다시 등장한다. 물론, 가수로서가 아니라 작곡자와 제작자로서이지만. 사랑과 평화의 1, 2집 앨범 힛트곡들인 '한동안 뜸했었지', '어머님의 자장가', '장미', '뭐라고 딱 꼬집어 애기할 수 없어요'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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