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중락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혜성처럼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가수, 그렇지만 그 여운의 꼬리가 긴
가수. 그룹생활까지 합쳐도 고작 5년, 27살이란 젊은 나이로 요절한
가수이다.
생전에 불 같은 인기로 당대 최고의 가수 배호를 능가하는 화려한
시절도 있었지만 기간이 길지 않고 그가 남긴 노래가 많지 않아
여운만 깊이 남았다.
차중락의 인기에 정점을 찍었던 노래는 가을을 상징하는 노래처럼 된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엘비스 프레스리의 곡을 번안한여 부른 이 곡이 그를 가을 남자로
만들었고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가수는 그가 부른 노래처럼 된다는 전설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차중락 버전 외에 차중광, 차도균 버전이 있어 혼동할 수 있다.
멋진 목소리가 집안 내력으로 차중락이 사망하자 그의 동생과 사촌형이
대신해서 목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친동생 차중광의 목소리는 매우 유사해서 구별하기 힘든
정도였다.
차중광은 1977년 앨범을 내고 이후 재즈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차중락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장충국민학교, 경복중
고등학교를 나와 영화에 관심을 두고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무렵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일본에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밀항을 시도하다 적발되어 실망하던 차에 사촌형인 차도균의 권유로
"키보이스"에 합류 하게된 것이 1963년인 22살 때이다.
사촌형 차도균은 1962년 "거리를 떠나"(1958년 손시향이 발표한 곡)
를 취입하며 데뷔한신인가수였고 키보이스 결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키보이스는 1963년 앨범을 내며 대중적인 활동을 하지만 주 무대는
미8군 무대였고,처음 무대에 오른 날부터 차중락은 인기를 끌었다고, 시민회관 무대에 오를 때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올랐는데 승마화를
신은 엘비스프레슬리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국의 프레슬리로 각인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차중락이 사랑하던 여인은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키보이스
멤버였던 윤항기의 기억에 의하면 에바가드너를 연상시킬 정도의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여인은 1966년
가을 미국으로 떠났고 그해 11월 발표한 이 노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사연과 함께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리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꼭 2년 후인 1968년 11월 무대에서 공연 중이던 차중락은 뇌막염으로 쓰러져 숨진다.
절정의 시기에 그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그를 못잊자 그의 동생인 차중광과 그의 사촌형인 차도균이
그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며 위안했다.
차중락이 낙엽따라 떠난 것이 1968년 11월. 그로부터 꼭 3년 후인 1971년 11월 동갑내기 배호가 안개 속으로 떠났다.
차중락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 하렸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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