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중락 - 사랑의 종말
차중락의 곡중에 좋아했던 곡이 히트곡인 "사랑의 종말" 1967년 발매된 차중락의 솔로 데뷔앨범에 실렸던 곡으로 동양방송(TBC)
라디오 연속방송극 주제가였다.
공전의 히트를 틴 이곡은 년말 TBC동양방송 방송가요대상 시상식에서 남자 최고신인가수상의 영에를 안겼다.
"섬마을 선생님" 가사를 쓴 이경재의 가사도 가슴을 치고 이봉조의 아름다운 탱고리듬에 실리는 차중락의 목소리는 가히 오금이
저릴 정도로 좋은데 이런 곡을 듣고 있자면 요절로 일직 떠난 것이 아쉽기가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TBC(동양방송) 라디오 연속극 "사랑의 종말"은 1969년 신상옥감독의 신필름에서 영화로 만든다.
영화제목은 "내일은 죽을지라도"였으며 "사랑의 종말", "외로워 못살겠어요"로 불리기도 한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진 가수, 그렇지만 그 여운의 꼬리가 긴 가수.
그룹생활까지 합쳐도 고작 5년, 27살이란 젊은 나이로 요절한 가수이다. 생전에 불 같은 인기로 당대 최고의 가수 배호를 능가하는
화려한 시절도 있었지만 기간이 길지 않고 그가 남긴 노래가 많지 않아 여운만 깊이 남았다.
차중락은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장충국민학교, 경복중 고등학교를 나와 영화에 관심을 두고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무렵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일본에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밀항을 시도하다 적발되어 실망하던 차에 사촌형인
차도균의 권유로 "키보이스"에 합류 하게된 것이 1963년인 22살 때이다.
사촌형 차도균은 1962년 "거리를 떠나"(1958년 손시향이 발표한 곡) 를 취입하며 데뷔한신인가수였고 키보이스 결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키보이스는 1963년 앨범을 내며 대중적인 활동을 하지만 주 무대는 미8군 무대였고,처음 무대에 오른 날부터
차중락은 인기를 끌었다고, 시민회관 무대에 오를 때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올랐는데 승마화를 신은 엘비스프레슬리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한국의 프레슬리로 각인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차중락이 사랑하던 여인은 이화여대 메이퀸 출신으로 키보이스 멤버였던 윤항기의 기억에 의하면 에바가드너를 연상시킬
정도의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여인은 1966년 가을 미국으로 떠났고 꼭 2년 후인 1968년 11월
무대에서 공연 중이던 차중락은 뇌막염으로 쓰러져 숨진다. 절정의 시기에 그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그를 못잊자 그의 동생인
차중광과 그의 사촌형인 차도균이 그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며 위안했다.

차중락 - 사랑의 종말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대답 없는 메아리 허공에 지네
꽃잎에 맺힌 사연 이루지 못해
그리움에 타는 마음 달랠 길 없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 몰랐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혼자
사랑을 잊지 못해 애타는 마음
대답 없는 메아리 허공에 지네
꽃잎에 맺힌 사연 이루지 못해
그리움에 타는 마음 달랠 길 없어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 몰랐어요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어요

[출처] 가요(5060)/사랑의 종말 - 차중락|작성자 첫발자욱
.
'5060 추억 가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남진 - 우수 (1) | 2025.12.14 |
|---|---|
| 이씨스터즈 - 좋아졌네 (0) | 2025.12.10 |
| 백야성 - 마도로스 부기 (0) | 2025.12.02 |
| 박재홍 - 향수 (0) | 2025.11.28 |
| 현인 - 굳세어라 금순아 (1) | 202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