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이와 덕이 - 순진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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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현이와 덕이 - 순진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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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와 덕이 - 순진한 아이




현이와 덕이는 1975년 4월(당시 장덕은 만 14세) 미8군 주최 파티무대에 "드래곤 래츠"라는 이름으로 장덕이 작곡한 곡

 "To be a child again"이라는 곡을 부러며 데뷔한다.
노래와 깜찍함에 반한 프로모터에게 공식 출연 제의를 받게 되고,이 무대를 본 방송국 PD들에 의해 스카웃되어 1개월 뒤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에 장덕 작사 작곡의 "꼬마 인형", "일기장"을 부르며 일반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1976년 "현이와 덕이"로 개명하고 컴필레이션 음반에 노래를 싣고, 영화 "푸른 교실"에도 "꼬마 인형"와 "일기장"을 영화

삽입곡으로 싣게된다.
1977년 장덕은 영화 "내 마음 나도 몰라"에 주연으로 출연하고 14살 때 작곡한 "소녀와 가로등"을 들어본  송창식의 적극

적인 지원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 최연소 작곡가로 참가하며 이후 4년 연속 이 가요제 참가히여 입상하개 된다.

같은 해 7월 장현과 임예진 주연의 영화 "선생님 안녕"에 장덕은 단역으로 출연했고 장덕 곡이 삽입된다. 
1978년 4월 당시 하이틴 영화 붐을 주도했던 세 분 김응천, 석래명, 문여송 감독의 옴니버스형태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

제 1화에 주연으로 열연하면서 하이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장덕을 짝사랑한 팬에게 다섯번씩이나 납치당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같은 해 공식으로 듀엣 "현이와 덕이" 정규 앨범 1집을 발표한다. 정규앨범 1집에 수록된 곡 중 하나인 "순진한 아이"

남매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첼리스트인 아버지와 서양화가인 어머니 사이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장현은 바이올린을 장덕은 피아노를 배우며 자라났다. 

장덕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종교와 성격 차이로 부모는 이혼하고 장덕은 고모집에 장현은 아버지 친구집에 맡겨지면서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다. 어린 나이에 큰 중격을 받았고 마침 장덕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두 달 간 입원했는데 이때 어머니의

병간호를 받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때로 기억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동양철학 심취로 남매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도봉산 자락의산거에 함께  들었었고

이 때 장덕은 오빠에게 기타를 배운다. 
이듬해 산기슭의 작은 집으로 내려왔으나 오빠는 남의 집  가정교사로 나가고 아버지는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아버지는 새엄마를 들였고 남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외로움을 잘 탓던 장덕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장덕은 "누가누가 잘하나" 같은 동요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며,오빠가 준 기타로 작곡을 시작하게 된다.
1975년 중학교에 들어간 장덕은 사춘기를 겪으며 더욱 우울하고 힘든 나날을 보내는데 이를 보다못한 어머니는 장덕과

장현을 당시 유행하던 남매듀엣 카펜터스처럼 활동하면 좋아지겠다고 생각하여 듀엣을 결성해 활동하도록 해준다. 
이들이 처음 나타난 것이 1975년 미8군 주최의 파티무대였다.
1979년 오빠 장현은 결혼하게 되고 어머니는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혼자 남은 장덕은 월세방에서 혼자 지내다 외로움을 견디가 못해 음독 자살을 기도하는데 이를 나중에  알게 된 어머니는

장덕을 설득해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미국으로 건너간 장덕은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인회 밴드에 도움을 주다

알게 된 "리 패밀리"의 멤버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병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그리워하다가  1983년 이혼과 함께 

귀국하여 한남동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독집 앨범 1집을 발표한다

 

장덕은 활발하게 작곡과 가수활동을 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낸다.
이은하의 "미소를 띠우며 너를 보낸 그모습처럼" 등 다른 가수들의 곡도 작곡하면서 오빠와 음악 경향이 달라 듀엣을 

접고 솔로 활동에 전념하면서 "님 떠난후에"를 발표하면서 KBS 가요톱10  5주 연속 우승을 하는 등 바쁜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때 오빠 장현은 연예기획사를 차리고 사업이 정상괘도에 오르고 있었는데, 호사다마라 설암판정에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인기 정상에서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하던 장덕은 오빠 병간호를 위해 활동을 중단하게 되며 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또한 여러 가수들로 부터 부탁 받은 작곡 등 과로에 감기 증세로 감기약과 수면제를

동시에 복용한 것이 화를 불러 상승작용으로 인해 28세의 짧은 생을 뒤로 하고 1990년 2월 불귀의 객이되고 말았다.
오빠 역시 자책감을 느끼면서 병세가 악화되 8월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34년 생을 마친다.
남매의 연이은 비극적 죽음은 팬들과 대중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현이와 덕이 - 순진한 아이



몰라 몰라 정말 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몰라 진짜 몰라 그 웃음이 누굴 보고 웃는 것인지

몰라 몰라 정말 몰라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몰라 몰라 진짜 몰라 난 몰라 사랑이 무엇인지

그러나 단 한가지 나는 알아요

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속삭임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몰라요

그래서 내 이름은 순진한 아이죠

 

 

 

 



몰라 몰라 정말 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래서 내이름은 언제나 순진한 아이죠



그러나 단 한가지 나는 알아요

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속삭임

사랑이 무엇인지 정말 몰라요

그래서 내 이름은 순진한 아이죠

 

몰라 몰라 정말 몰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래서 내이름은 언제나 순진한 아이죠

순진한 아이죠. 순진한 아이죠.

 

 

 

[출처] 가요(듀엣, 7080)/순진한 아이 - 현이와 덕이|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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