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 가슴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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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낭만 가요

남진 - 가슴 아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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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 가슴 아프게




남진은 해병대 출신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가수이며 배우이기도 하다.

당시 가장 핫한 아이콘 중에 하나였던 그를 만나보자.목포일보 사장이며 야당의 거물급 국회의원이었던 김문옥의 둘째 

아들 남진은 첫째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게 되자 배우가 되겠다고 서울로 상경하여 아버지 몰래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였다. 배우수업의 일환으로 음악학원에서 연습하던 그는 20세인 1965년

앨범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였고 1967년 발표한 "우수"와 "가슴아프게"가 빅히트하면서 같은 해 제작된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데뷔하게 된다. 

그 해 MBC방송 신인상 수상.이후 1968년 해병대 입대하여 사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으며, 복무 중에도 노래를 발표하고

영화에 출연하며 지속적인 인기를 이어갔다. 1971년 전역 후 복귀 리사이틀을 통해 공식적인 활동 재개를 하면서 "마음이

고와야지", "그대여 변치마오", "님과 함께" 등으로 라이벌이던 나훈아를 제치고 MBC가수왕상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한편 영화에서도 주가를 올리며 70여편의 영화에 주연,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잠시 미국으로 이민 갔다 돌아온 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빈잔", 둥지" 등의 힛트곡을 내면서 아직도 활동이 왕성하다.

​정두수작사 박춘석작곡의 "가슴 아프게"는 지구레코드 전속기념으로 만든 앨범에 수록되었던 곡.
남진은 초기 팝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으나 정작 트로트로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1966년 봄. 작사가 정두수가 지구레코드사장이 노래가사를 써달라는 요청에 부산광안리에 가면 시상이 떠오를

같았는데 부산까지는 못가고 인천 연안부두애 갔다가 봄비를 맞고 찾아든 어느 술집에서 젊은 여인이 듣던 라디오 드라마의

고동 소리와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안개에셔 "저 놈의 안개만 없다면 가슴이 뻥뚫렸을 텐데..."하는 생각에 시상이

떠올라 공중전화로 작곡가 박춘석에게 불러주었는데 박춘석은 손인호가 불렀던 곡에 가사를 바꾸고 곡을 다듬어 완성

했다고 하는 곡이다.

앨범은 남진이 지구레코드 전속으로 옮긴 1967년 3월에 만들어져 발패 후 한 달만에 발매순위 1위에 오르며
당시 1위였던 이미자를 추월했고 남진은 4월의 최고 가수가, 곡은 최고 인기가요가 된다.
노래가 히트하고 바로 1967년 박상호감독 영화 "가슴아프게"을 제작한다.

남진은 "문희"와 주연을 맡았고 영화에서 이곡을 직접 불렀다.
1967년 10월 20일 심의를 마치고 10월 말 개봉한 영화는 4만명의 관객이 들어 흥행에 성공앴고, 년말에는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면서 일약 최고의 스타 가수겸 영화배우가 된다.

 

 

 

 

 

 

 

남진 - 가슴 아프게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여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마음 같이 목메여 운다

 

 

[출처] 가요(5060)/가슴 아프게 - 남진|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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