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희 - 얼굴
박인희는 숙명여대 불문과 재학 중 미도파 싸롱에서 MC를 보다가 이필원을 만나 1968년 뚜아에무아를 결성하고 음반을
내면서 가요계에 받릉 딛는데, 뚜아에 무아가 한창 전성기에 있을 때인 1971년 동아방송 라디오 "3시의 다이얼" DJ로 활동
하게 되면서 듀엣활동에 소홀해지고 1972년에는 솔로로 독립하면서 음반을 낸다.
박인희는 이때부터 솔로 활동과 병행해 방송인으로 오래 활약하게 된다. 한편 팀 해체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결혼 전까지
광화문에서"뚜아에무아"라는 레코드가게를 운영해 지나며 본 적이 있다.뚜아에무아 이필원은 한인경을 수혈해 1973년
부터 2기 활동을 하게 된다.
박인희는 종로 안국동에 있는 풍문여고 12회 졸업생으로 이해인과 김을동이 동창이고 김상희(10회), 반효정(10회)과함께
공부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이해인과는 함께 수필집을 내기도 했고 숙명어대 3학년 때 지은 시 "얼굴"은 "한국명시집"
에 실리기도 했고 그의 Talk송으로 꽤 인기가 있기도 했다.
1981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주 한인방송에서 오래 활동하기도 했다.
박인희의 "얼굴"은 "모닥불"과 함게 솔로 데뷔앨범에 실린 곡으로 1980년대 문학의 밤과 같은 낭만적 분위기 물씸 풍기는
시 낭송곡으로 이후 "목마와 숙녀"의 큰 인기와 함게 시 낭송 앨범 발매 붐을 일으키는 촉매 역할을 해서 인기 DJ와 성우
들의 시 낭송 앨범을 양산을 부채질 하게 된다.
박인희 - 얼굴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출처] 가요(7080)/얼굴 - 박인희|작성자 첫발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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